[의료의 성경적 이해 (대하16:12-13)] 페이지 기록 입니다.
본문을 보면 아사는 그가 병이 들었을 때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의사를 찾아갔다 그래서 아사는 그 병으로 죽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어떤이는 본문을 보고 그리스도인들은 병이 났을 때에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성경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아사의 잘못은 그가 의사를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이다.
아사는 . 그가 집권할 초기에는 그는 유대의 가장 의로운 임금중의 하나였다. 솔로몬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의 왕국이 분단되었을 때그는 많은 개혁을 했고 다른 신에게 예배드리는 것을 파괴했다.(대하 14:2-8,15:12-19참조) 에디오피아(구스) 사람들에게 위협을 당했을 때에도 그는 주님을 찾았다. 그리하여 에디오피아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대하14:9-15). 그렇게 주님과 더불어 유대를 다스렸고 전쟁에도 승리했던 그가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의 위협을 받았을 때에는 그는 하나님보다 시리아(아람)의 왕의 도움을 구하였다 (대하 16:1-5)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하나니를 아사에게 보내어 그의 잘못을 깨닫게 하셨다. 그러나 아사는 화가 나서 하나니를 옥에다 가두었고 (대하16:7-10). 더우기 그는 그의 사람들을 억압하기 조차 했었다 (대상16:10후반절).
본문에서 아사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의사를 찾은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예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의사들을 찾지 말아야한 다는 것을 말하여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병이 났을때에 의사들을 찾아가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여기에 답을 하기전에 우리는 성경에서 의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고 나서 그리스도인들은 병이 났을때에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 아니면 말아야 하는 것인지 하는 주제에 대하여 토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의사라는 단어(헬라어로 히아트로스)는 구약성경에 네번 나타난다. 먼저 우리는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 대하 16:12에 의사라는 단어가 나타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리고 창50:2에는 애굽의사들은 야곱이 죽었을 때 야곱의 시체에 방부제를 발랐다는 기사가 나온다. 욥은 욥13:4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친구들을 향해 다 쓸데없는 의사들이라고 불렀다. 예레미야는 렘8:22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치료하는 영적인 의사를 두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을 통해서도 우리가 찾아보고 싶은 어떤 원리나 실제적인 단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의사라는 단어는 일곱번 나타나는데 그 중 여섯번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한 번은. 골4:14에서 바울이 누가에 대하여 ‘사랑하는 의사 누가는’ 이라고 말할 때 사용되어 지고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6구절들 중 마9:12, 막2:17, 눅5:31절등 세구절에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자에게라야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는 구절들로서 의사라는 단어가 세 번 사용되어 지고 있다. 그런데 이 구절들에는 육체적인 건강보다 영적인 건강에 초점이 마추워져 있다. 왜냐하면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에게는 영을 치료하시는 위대한 의사이신 예수님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에 초점을 마추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막5:25, 26,과 눅8:43은 같은 사건을 말하고 있는 두 구절인데 여기서는 의술을 시행하고 있는 의사를 말하고 있다. 즉 막5:25-26“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 졌던차에”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말 성경 눅8:43에는 의사라는 단어가 빠져 있는데 다른 사본들에는 의사에게 재산을 허비하였다는 구절이 나오고 있다.
이 구절은 신약시대에도 오늘날과 같이 재정적인 능력이 없으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우리에게 시사해 주고 있다 . 또한 그 여자는 의사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은 의사가 병을 고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고치셨다는 것을 신약에서 찾아 볼수 있다.
그리고 의사란 단어는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당시의 속담을 인용하실 때에 즉 “...의원아 너를 고쳐라...”(눅4:23) 라는 당시 유대인들의 속담을 말씀하실 때 한번더 나와서 모두 일곱 번 나온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의심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는 문맥에서 나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진리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한방법으로 말씀 하시는 것이다
위와같은 구절들은 의사의 도움을 받을 것인 가에 관한 성경적 원리들을 찾는 우리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지만 성경에서 의사를 어떻게 보는가를 말해 준다. 즉 신약과 구약에 나오는 의사들에 관한 모든 구절들을 합해서 생각하여 보면 사람들이 병이 들었을 때는 의사가 필요하여 의사에게 가서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소비하지만 도움은 받지 못하는 쓸데없는 의사라는 것이다. 시체나 처리하는 사람이다. 누가도 의사이지만 단 한 번도 의료 행위를하여 육체적인 병을 고치지 않는다 . 심지어 아사는 의사를 찾아가서 해를 자초하였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다 .
그러면 다음으로 신약성경에 나오는 의료적 처치들을 생각하여 보자. 신약성경에서는 때때로 약이 사용되어졌다. 그러나 그 약은 의사들이 사용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초기 사역에서 모종의 기름을 사용하였다. 약5:14에 보면 지교회의 장로들은 병든 사람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 귀절들은 의학적으로 기름을 바르기 것보다는 의식적으로 기름을 바르는 것을 말하는 것같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문맥으로 봐서 의학적 효과를 예상하기보다는 영적인 사역에 더 관계되어있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딤전5:23.에서 디모데에게 지시하기를 “이제 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라고 하였다. 왜 바울은 이와같은 지시를 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바울은 의사가 아니였기 때문에 이것은 의학적인 배려에서 나온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음으로 눅10:34에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은 기름과 포도주를 다 사용하였다. 역시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이 방법은 그때당시 보통 있었던 치료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치료들은 의사에 의해서 지시되거나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에 관해서 언급이 없으므로 이 문제와 상관이 없는 것같다
우리는 이 구절들로 부터 성경에 나오는 의사들의 의료행위에 대한 어떤 원칙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치유의 예는 거의 다 기적적인 것들이다. 신약성경에는 사랑하는 의사 누가의 의료행위는 단 한 번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면 왜 우리들은 성경에서 의사와 의학에 관한 성경적인 원리를 발견하지 못하는가?
왜냐하면 의학은 본래 종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의료적인 보살핌(Care)을 받기 위하여 의사들에게 가기 보다는 제사장에게 가라고 지시하고 있다. 그리고 의학은 종교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탄에게 혹은 귀신들에게 혹은 다른 우상들에게 치료의 주문을 외우는 것이 치료였다. 그래서 치료를 위해서 의사를 찾기 보다는 사제를 찾아갔다.
욥 1:6- 2:8에 보면 사탄은 죽음과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마 17:14-20 눅 8:26-31에 보면 귀신들은 육체적인 혹은 심리적인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마 10:8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여행을 바깥으로 보내시면서 제자들에게 지시하신 말씀가운데는 귀신을 내어 쫒는 것이 포함되어져 있다.
만약 사탄과 그의 졸개들이 질병의 원인이라면 그들은 또한 질병을 고칠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귀결이다. 왜냐하면 치료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을 없애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알았었다. 그래서 마9:34에서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벙어리된 자를 고치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쫒으실 수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귀신들의 왕의 권위를 힘입어서 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말하기를 이것은 예수님시대는 귀신을 내어 쫓아 병을 고쳤지만 현대의사들은 이런 방법으로 치료하지 않는다 라고 말할것이다. 여러분들은 부분적으로는 옳다. 그런데 사실 현대의학은 이 우주는 원인과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질서위에 세워졌다는 성경적 우주관위에 세워졌다. 이와 같은 성경적 세계관은 오늘날 의학을 포함한 모든 과학 발전의 기초이다. 의학이 과학적인 발전을 하게 된 것도 성경적인 세계관의 영향이다. 현대의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젊은 시기에 하나님에 대하여 극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서양의학은 지난 25년이상 무신론이 되어왔다. 현대의학의 놀라운 성장은 우리문화의 불경건함의 증가와 동시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들은 현대의학을 의심해야만 한다.
만약 건강과 의학의 시술이 본래적으로 종교적이라면 그때는 환자와 의사들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논리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도덕한 성관계로 옮겨지는 질병을 가졌을때 교회가 그 간음의 문제를 처리하고 치료를 한다든지 또 그 배우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치료를 받는다든지 할 수있게 된다. 의사와 환자가 종교가 다를 때 환자들은 죄로 인한 질병을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고 치료를 받음으로 자기의 죄가 용서을 받은 것으로 알게 하여 죄를 조장하는 결과가 생긴다.
사실 이런 경우에 환자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성경적인 상담이다. 의사들은 육체적인 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훈련되어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의사들은 그가 환자 자신과 상담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느낀다 하더라도 상담을 할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성경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치료에는 성경적인 상담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상담은 환자의 교회를 통하여서 혹은 원목실을 통해서 이루워 질 수 있다. 사실 그리스도인 의사는 이와같은 성경적 상담의 이용이 가능한 곳에서 치료할 계획을 해야 한다. 자신이 직접 할 수 없다면 다른 영적인 상담자를 대처하지 않고서는 시술을 시작할 계획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의사들은 그들의 병원에서 심리적인 즉 영적인 문제가 보통 제기 되어진다는 것을 안다. 의사가 환자의 영에 대해 주의하지 않는 다면 몸에 효과적인 치료가 이루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의학이 영에 대한 주의력 없이 실행 되어진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뜻에 벗어난 참으로 심각한 잘못이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 의사에게는 이와같이 특별한 형태의 의학을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이와같은 의학의 필요성을 알고있는 의사들이 그렇게 흔하지도 않을뿐더러 또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도 이와같이 성경적으로 환자를 접근하는 의사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환자가 그리스도인 의사를 찾는 예는 거의 없다. 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리스도인 의사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환자를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조금 더 친절하고 믿을 수 있으니까 찾는 것이다.
자주 의사는 그의 환자안에 있는 문제 때문에 전문가들과 상의한다. 그러나 영적인 특수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환자의 경우에는 그리스도인인 의사들이나 목사와 상의하는 예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Christian 의사들과 Christian 환자들이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만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Christian 의사들은 의학 교육에서 배우지 않은 성경적 교육을 포함하는 영적 훈련을 받아야만 한다. 더 중요한 것은 Christian 환자들이 예수그리스의 인도 밑에 있는 분별있는 의사들을 선택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만약 환자들이 의사를 선택할 때에 윤리적인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선택한다면 오늘날 의료윤리안에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환자가 영적인 의사를 선택 한다면 그런 의사는 불필요하고 비싼 검사나 치료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환자를 위해 기도할 것이고 기름바르는 것을 시행할 것이다.
현대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현대의학은 현재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 있다. 의료행위가 성경적 세계관 안에서 시행되어 진다면 오늘날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의료윤리의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의사들외에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의사들이 가장 과학적인 방법으로 치료에 임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 또한 사각지점과 편견이 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부도덕 한 것에 개방되어있다. 사기꾼들과 돌파리 의사들도 병을 치료하고 있다. 이런 돌파리 의사들을 대할 때는 현대의학을 대할 때보다 훨씬 더 주의를 많이 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시술에도 주의할 필요가 없지 않아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의사들의 서비스를 받으라고 명령하시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 가운데서는 의사보다 하나님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되는데 이 말씀은 의학이 과학적이 아닌 구약시대에만 적용한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시대에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의학은 과학이지만 그안에 종교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의료써비스를 받을 때는 그 써비스가 그리스도인 의사로 부터 받는 것인지 아니면 이방종교인으로 부터 받는 것인지를 심각하게 분별하여 치료 받은 것이 성격적이다. 다시 말해서 아사가 하나님을 떠나 의사를 찾아간 것이 문제이지 의사를 찾아 치료하는 것이 비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남안에서 의사를 찾아 가야할것이다.